「그 남자들은 왜 거기로 떠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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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들은 왜 거기로 떠나는가」

— 50대 중년, 동남아의 밤을 걷다 —

작성의 편의상 친구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작성 하겠다.(우리는 여기에서 누구든 친구가 된다^^)
 

1부. 그 남자들은 왜 필리핀의 밤으로 떠나는가

인천공항 출국장, 금요일 저녁 9시.

3번 체크인 카운터 앞에 50대 남자 네 명이 서 있다. 캐리어는 하나같이 중간 사이즈다.
너무 크면 티가 나고, 너무 작으면 불편하다는 걸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터득한 사람들의 짐이다.
옷차림은 편한 바람막이에 운동화. 골프 모임이라고 했는지, 출장이라고 했는지는 각자 집에서 다르게 말하고 나왔을 것이다.
 

면세점에서 양주 두 병을 나눠 산다. 하나는 마실 것이고, 하나는 돌아올 때 가져올 기념품이 된다.
탑승구 앞 의자에 앉아 맥주 캔을 하나씩 따면서 웃는다. 그 웃음이 묘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종류의 웃음이다. 뭔가 기대되는 것이 있는 사람의 표정.

행선지는 세부 또는 마닐라가 될 것이다. 밤 11시 출발, 현지 도착은 새벽 2시.
그 시간에 공항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그내는 아는가?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부분은 이미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낯선 질문
 

나는 오랫동안 이 풍경을 그냥 지나쳤다.
 

불편하니까, 복잡하니까,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풍경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저 남자들은 대체 무엇을 찾아 거기까지 가는 걸까.
단순히 \\\\\\\'남자의 본능\\\\\\\'이라는 말로 덮어버리기에는, 저 얼굴들이 너무 복잡해 보였다.

들뜬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쓸쓸하고, 자유로운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로부터 쫓기는 것 같은 그 표정.
저것은 단순한 유흥을 앞둔 설렘이 아니었다. 무언가 훨씬 오래된 결핍이 드디어 출구를 찾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질문을 제대로 붙잡기로 했다.


한국 사회에서 50대 남성으로 산다는 것
 

먼저 이 남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봐야 한다.

1970년대 초반생.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었거나, 한창 대리·과장 시절이었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옆에서 보며 살아남은 세대. 그 경험이 이 남자들에게 심어준 것은 단 하나다.

\\\\\\\'살아남으려면 회사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그래서 바쳤다. 20대의 열정도, 30대의 체력도, 40대의 노하우도. 아이 첫 걸음마를 놓쳤고, 부모님 기일에 출장을 갔고, 결혼기념일을 수십 번 잊었다.
그렇게 사는 게 정상인 줄 알았다. 아니, 정상이어야 했다. 그래야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50이 넘으면서, 그 모든 것을 바친 자리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조직은 새로운 세대를 원하고, 시장은 이 남자들의 경험보다 젊음을 선호한다.
수십 년간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온 그가, 처음으로 \\\\\\\'쓸모가 다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느낀다.

그 감각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다.
물론 그 쓸모 라는 것은 사람마다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필리핀이 제공하는 것


그런 남자가 필리핀의 밤거리에 선다.

클락의 앙핼레스시티, 마닐라의 마카티, 세부의 라푸라푸. 이름은 달라도 풍경은 비슷하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달콤한 과일 향과 매캐한 담배 연기가 뒤섞인 공기, 그리고 어디서나 들려오는 음악.

그리고 그곳에서 이 남자들은 무언가를 경험한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을.

누군가 먼저 반긴다. 누군가 내 이야기에 웃어준다. 누군가 나를 신경 쓴다.
물론 그건 직업상 댓가성 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직업적 친절이라는 걸 모르는 척하게 만드는 온도가 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편안하다. 서울에서는 매일 마주치는 가족한테도 느끼기 힘들었던 그 편안함이.

이 남자들이 필리핀에서 사는 것은 술도 아니고 향락만도 아니다. 


가장 본질적으로는, 다시 한번 자신이 살아있다는 감각이다. 누군가에게 환영받고, 선택받고, 존재 자체로 반겨지는 경험.
그것이 설령 돈으로 만들어진 것일지라도, 오랫동안 그 감각을 잃고 살아온 남자에게는 압도적으로 강렬하게 작동한다.

거기에 \\\\\\\"익명성\\\\\\\"이 더해진다. 서울에서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부장이다. 모든 행동에 역할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세부의 마닐라의 클락의 밤거리에서 그는 그냥 한 사람이다. 아무도 그의 직함을 묻지 않고, 아무도 그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없다.
이름을 가르쳐줄 필요도 없다. 그 익명의 자유가, 어떤 고급 호텔보다 비싸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이 남자들을 단죄하는 건 쉽다. 불륜이니, 일탈이니,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부재니. 그 비판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그 판단 이전에 먼저 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왜 이 남자들은 국내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그 감각을 찾지 못하는가.
한국 사회가 50대 남성에게 허락하는 정서적 출구가 얼마나 좁은지를 생각해보면,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간 역할만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삶이 만들어낸, 예정된 공백이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타국의 밤거리까지 날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나는 진심 서글프다.

비행기는 새벽 2시에 세부에 또는 마닐라에 착륙한다. 그 남자들은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결핍을 품고, 그 밤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로 다시 서울의 지하철을 탄다.

이 시리즈는 그 사이에 있는 이야기다.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 누구보다 필리핀을 좋아하는 Kai의 생각 공감해 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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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느긋한동선러

    처음이면 조건을 한 번에 보기보다 필요한 부분부터 좁혀서 보는 게 편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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