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필리핀 이웃과 친해지는 법

정착이야기

4부. 필리핀 이웃과 친해지는 법

— 피에스타, 음식, 그리고 담벼락 너머의 온기 —

세부의 한 주택가에 이사 온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정ㅇㅇ은 이웃집에서 음악 소리를 들었다.

밤 10시였다. 꽤 크게 들렸다. 한국이었다면 층간소음 앱을 켜거나, 

경비실에 전화하거나, 적어도 벽을 한 번쯤 두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냥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다.

다음 날 아침 이웃 아주머니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손에 뭔가를 들고.

\"Sorry for last night. Party. Here, for you.\" 접시 위에 음식이 담겨 있었다. 

전날 파티에서 남은 음식이었다. 카레 비슷한 것과 밥, 

그리고 튀긴 뭔가...그게 이웃과의 첫 만남이었다.




피에스타라는 세계


필리핀에서 피에스타(fiesta)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마을이나 지역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가톨릭 전통 행사로, 

날짜가 정해져 있고 온 동네가 참여한다. 

음식을 잔뜩 만들어 이웃과 나누고, 음악을 틀고, 춤을 추고, 

밤새 떠든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이 날만큼은 다 같이 먹고 마신다.

정ㅇㅇ이 이웃집 피에스타에 처음 초대받은 건, 

이사 온 지 두 달째 되던 날이었다. 

아주머니가 직접 와서 초대를 했다. 어떻게 입고 가야 하는지, 

뭘 들고 가야 하는지 몰라서 한인 커뮤니티에 물어봤다.

답변들이 왔다. 그냥 가면 된다. 빈손으로 가도 된다. 

음식은 넘친다. 그냥 먹고 웃으면 된다.

실제로 가보니 정말 그랬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다들 자연스럽게 밥을 덜어줬다. 

먹고 있으면 또 덜어줬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먹는 것 앞에서는 말이 필요 없었다.

그날 이후 정ㅇㅇ은 그 이웃집과 진짜 이웃이 됐다.




한국식 이웃 관계의 민낯


필리핀에서 이웃 관계를 경험하면서, 

한국의 이웃 관계가 새삼 떠올랐다.

아파트 문화가 보편화된 한국에서 이웃은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시선을 피하고,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 문화.


그런데 필리핀의 이웃 문화는 다르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 인사를 한다. 음식을 많이 만들면 나눠준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와서 돕는다. 

그 관계가 때로는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 온기가 익숙해지면 

한국식 단절이 오히려 낯설어진다.

이방인인 외국인에게도 그 온기는 차별 없이 온다. 

필리핀 이웃들은 대부분 새로 이사 온 외국인을 

신기해하면서도 친절하게 대한다. 

그 친절이 진심이라는 것을, 함께 밥을 몇 번 먹고 나면 알게 된다.




친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


필리핀 이웃과 친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이 뭔지 아냐고 

오래 산 한국인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비슷하게 말한다.

음식을 나눠주는 것이다.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이웃집에 갖다 주는 것. 

그것만큼 빠르게 마음을 여는 것이 없다고. 

잡채든, 전이든, 김치찌개든 — 

뭘 줘도 필리핀 이웃들은 신기해하며 기뻐한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반드시 뭔가를 들고 온다.

음식이 언어가 된다. 

그 언어는 세비사노도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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