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또는 네이트온 일 수 도 있겠다. 단체 소통 채팅방 이름은 \'88동기모임\'이다.
멤버는 열두 명. 대학 입학 동기들이다.
마지막 메시지는 4개월 전, 누군가 올린 \'건강 관리법\' 링크에 하트 이모티콘 다섯 개가 달린 것이 전부다.
그 전 메시지는 설날 새해 인사...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이 멤버들은 달랐다. 종로의 허름한 호프집에서 새벽 두 시까지 소주를 마셨다.
꿈을 얘기했고, 사랑을 얘기했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허풍도 쳤다.
\'우리 평생 이렇게 친하게 지내자\'는 말도 했다. 그때는 그게 가능할 것 같았다.
지금 그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누군가의 부모 부고나 환갑 자리뿐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보고 싶어서\' 연락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어색한 일이 됐다.
우정이 증발하는 시간
20대의 우정은 자연스럽게 유지된다.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자주 만날 이유가 넘쳐난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앞 분식집에 모이고, 술 한잔 하러 가는 데 명분이 필요 없다. 친밀함이 물처럼 흘러넘친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아내가 생기고, 애가 생기고, 대출이 생기면서 각자의 삶이 무거워진다.
친구를 만나는 건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 되고, 시간을 내는 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 된다.
처음엔 한 달에 한 번, 그다음엔 분기에 한 번, 나중엔 거의 보지 않게 된다.
그 과정이 너무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에, 우정이 사라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지 못한다.
어느 날 문득 카톡 창을 열어보고, 마지막 대화가 7개월 전이라는 걸 발견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아,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구나...
한국 중년 남성이 유독 외로운 이유
국내외 여러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결과가 있다.
한국 중년 남성의 사회적 고립 수준이 유독 높다는 것이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 감정 표현에 서툰 문화다.
\'남자는 울지 않는다\', \'힘들어도 티 내지 않는다\'는 코드가 이 세대를 관통한다.
속내를 털어놓는 것은 약한 것이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무능한 것이라는 암묵적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을 수십 년간 내면화한 남자들은, 정작 친한 친구 앞에서도 진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둘째, 관계의 대부분을 직장 중심으로만 구성해온 삶의 방식이다.
이 남자들의 사회적 관계망을 그려보면, 대부분의 선이 직장으로 향해 있다.
거래처, 상사, 부하직원. 그 관계들은 직함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 사라진다.
진짜 친구, 즉 아무 이유 없이 만나도 좋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를 세어보면, 손가락 한두 개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법을 모른다.
20대처럼 쉽게 친해지는 것이 이제는 안 된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고, 그 과정 자체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래서 새로운 관계보다는 기존 관계에 의존하려 하는데, 그 기존 관계도 이미 희미해져 있으니 결국 사방이 막힌다.
술자리 우정과 진짜 우정의 차이
이 남자들에게 우정의 공간은 주로 술자리였다.
같이 술을 마시고, 같이 취하고, 세상 욕을 하고, 다음 날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것. 그것이 친함의 표시였다.
그런데 그 술자리에서 실제로 나눈 이야기가 뭔지를 떠올려보면, 대부분 회사 욕, 정치 이야기, 남 이야기다.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없다. 지금 얼마나 외로운지, 집에서 얼마나 힘든지, 퇴직이 얼마나 두려운지 같은 이야기는 술자리에서도 꺼내지 못한다.
그 수준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이 남자들의 진짜 문제다.
패키지 여행이라는 임시 연대
그래서 이 남자들은 \'함께 떠나는 여행\'을 선택한다.
혼자 가기엔 쓸쓸하고, 깊은 관계도 없으니, 비슷한 처지의 남자들끼리 모여서 필리핀으로 날아간다.
비행기 안에서 맥주를 마시며 오랜만에 큰소리로 웃는다.
서로의 아내 이야기, 자식 이야기, 직장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3박 4일 동안만큼은, 오래전 호프집의 그 감각이 잠깐 되살아난다.
그것이 얼마나 얕고 일시적인 연대인지를, 그들도 어느 정도는 안다.
돌아오면 또 카톡 이모티콘 사이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간다. 그 며칠이라도 진짜 친구 같은 사람과 함께이고 싶으니까.
함께 늙어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세대. 젊음은 함께 보냈지만, 중년은 각자 외롭게 버티고 있다.
그 외로움이 만들어내는 선택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도덕으로만 재단해왔다.
한국 남자들 대부분이 그런것 같다. 마치 정답이 정해져있고, 그 정답을 그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을 만들고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나도 우리도 아직은 인정받고싶은 사람들이다...
댓글 1
처음 가는 분들은 위치 기준으로 보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