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봄, 스물다섯의 모 과장은 처음으로 넥타이를 매던 날을 기억한다.
거울 앞에서 여러 번 고쳐 매고, 구두를 한 번 더 닦고, 회사 정문을 들어서던 그 아침. 떨렸지만 기대됐다.
이 회사와 함께라면, 이 나라의 성장과 함께라면,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긴장감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이 과장은 이제 모 부장이 됐다. 그리고 요즘 들어 자꾸 이런 일들이 생긴다.
올해 임원 승진 후보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졌다. 팀 회의에서 자신이 제안한 안건이 가볍게 넘어가고,
30대 팀장의 의견이 채택된다.
인사팀장에게서 \'면담 좀 하자\'는 연락이 왔다. 어떤 내용인지는 가기 전에 이미 안다.
30년을 바쳤다는 것
이 세대의 직장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경험이 있다. \'회사를 위해 살았다\'는 것이다.
야근은 당연한 것이었다. 밤 10시에 퇴근하는 것이 정상이었고, 주말에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상사의 전화는 자다가도 받았고, 회식은 빠지면 눈치가 보였다.
여름 가족 휴가는 팀 스케줄에 맞춰야 했고, 아이 학예회보다 거래처 미팅이 우선이었다.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수용하면서 30년을 버텼다.
그것이 성실한 직장인의 표준이었고, 그렇게 사는 것이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그 믿음으로 대출을 갚고, 아이들을 대학 보내고,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그 30년의 헌신이 \'명예퇴직 권유\'라는 한 장의 문서로 돌아오는 현실 앞에 서면,
이 남자들은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다.
배신감인지, 허탈감인지, 분노인지, 슬픔인지. 딱 하나로 정의할 수가 없다.
그냥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직함이 곧 정체성인 삶
한국 사회에서 남성, 특히 중년 남성에게 직함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이유이자 사회적 위치이자 정체성이다.
\'김 부장님, 이부장님\'으로 불리는 동안, 그는 사회적으로 완전한 존재다.
명함을 내밀면 상대방이 허리를 굽히고, 회의실에서 그의 발언은 무게를 가진다.
후배들이 의견을 묻고, 거래처가 밥을 사고, 존재감이 있다.
그러나 그 구조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함께 흔들린다.
어느 날부터 회의에서 자신의 발언 이후 정적이 흐르기 시작한다.
예전엔 그 정적이 \'무게감 있는 의견을 소화하는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어색하게 넘기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후배들이 자신보다 새로운 툴을 더 잘 다루고, 영어도 더 유창하고, 보고서도 더 세련되게 쓴다.
자신의 30년 경험이 어느 순간 \'구식\'으로 분류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때, 그 감각은 꽤 잔인하다.
집에서도 투명해지고, 직장에서도 서서히 지워지는 남자. 그 남자에게 남은 공간은 도대체 어디인가.
IMF가 심어놓은 트라우마
이 세대 직장인들에게는 공통의 집단 트라우마가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다.
그 시절, 멀쩡히 다니던 직장인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왔다.
아버지 세대가 그렇게 무너지는 걸 보며 자란 이 남자들은 하나의 신념을 가슴에 새겼다.
\'회사에 목숨 걸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 신념이 30년간 이들을 야근하게 만들고, 상사에게 맞춰 살게 만들고, 자신보다 조직을 먼저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신념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살아남았으니까. 그러나 살아남은 대가가 너무 컸다.
젊음을 소모했고, 건강을 소모했고, 가족과의 시간을 소모했다.
그리고 이제 그 소모의 청구서가 날아오고 있다.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퇴직 이후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 남자들은 \'일하지 않는 나\'를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20대부터 50대까지, 삶의 모든 리듬과 의미가 직장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그 틀이 삶이었다.
취미요? 골프는 있지만 그것도 거래처 관리를 위해 시작한 것이다.
진짜 좋아서 하는 것이 뭔지 물으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직장 밖의 인간관계도 빈약하다.
회사를 나가면 만날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생각해보면 무서워진다.
그래서 퇴직이 가까워질수록 불안이 커진다. 일이 없어지면 나는 하루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직함이 없어지면 나는 무엇으로 나를 소개할 것인가. 나는 무엇으로 존재할 것인가...
그 공백이 두려운 남자들이, 아직 현역인 동안 필사적으로 도피처를 찾는다.
안정적인 느낌 괜찮다는 자기 위로...필리핀의 밤은 그 도피처 중 하나다.
적어도 거기서는, 자신이 여전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
30년을 바쳤는데 남은 것이 공허함과 불안 뿐 이라면, 그것은 그 남자만의 실패가 아니다.
그 남자를 그렇게 쓰고 버리는 구조의 실패다. 우리는 그 구조를 너무 오래 당연하게 여겨왔다.
입가에는 미소를 듸우며 생각한다.
내가 맞는건가? 이렇게 살아가는게? 다들 그렇게 이렇게 살아가고 있겠지??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 가고있다...
댓글 1
이건 처음 보는 분들도 보기 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