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을 세 번 이상 다녀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재밌는 현상이 있다.
\"왜 또 가요?\"라고 물으면, 처음엔 다들 비슷하게 대답한다.
\"바다가 예뻐서요\", \"물가가 싸서요\", \"날씨가 좋아서요.\"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대답들이 완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왠지 안다.
바다가 예쁜 나라는 많다. 물가 싼 나라도 많다. 날씨 좋은 나라도 많다.
그런데 왜 하필 필리핀인가. 왜 한 번 가면 또 가고 싶어지고,
두 번 가면 살고 싶어지는가.
그 \'왜\'를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많이 보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속도가 다르다
필리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있다.
시간이 느려진다는 감각이다.
한국은 빠르다. 모든 것이 빠르다. 배달은 30분 안에 와야 하고,
카카오톡은 읽으면 바로 답장해야 하고, 엘리베이터는 1초만 늦게 닫혀도
사람들이 버튼을 누른다. 그 속도에 살다 보면, 빠른 것이 정상이 된다.
느린 것이 불안이 된다.
그런데 필리핀에 오면 그 속도가 깨진다.
식당에서 주문을 해도 음식이 언제 나올지 모른다.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필리핀 타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나라의 시간은
한국의 시간과 다르게 흐른다. 처음엔 답답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그 느림에 몸이 적응하기 시작한다.
밥이 늦게 나오면 기다리면 된다. 약속이 늦어지면 그 시간에 하늘을 보면 된다.
서두르지 않아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그 감각이 한국에서는 사치였다.
웃음의 밀도가 다르다
필리핀 사람들은 잘 웃는다.
처음엔 그것이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관광지니까, 돈을 받으니까 웃는 거라고.
그런데 관광지를 벗어나도 마찬가지다. 시장 아주머니도 웃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웃고,
뭔가를 잘못 알아들어서 당황한 상황에서도 같이 웃는다.
그 웃음이 한국의 웃음과 다른 것은 텍스처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웃음은 대부분 이유가 있다. 재밌으니까, 기쁘니까, 분위기 맞추려고.
그런데 필리핀의 웃음은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나쁘지 않으니까.
그 이유 없는 웃음 앞에서, 한국 사람들은 종종 무장해제가 된다.
뭔가를 잘해야 웃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웃어도 된다는 것을.
그냥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판단받지 않는 느낌
한국 사회는 시선이 많다.
나이에 맞는 행동이 있고, 직업에 맞는 이미지가 있고, 외모에 대한 기준이 있다.
그 시선들이 매일 쌓이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항상 무언가를 신경 쓰는 상태가 된다.
내가 지금 이상하게 보이지 않나,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필리핀에 오면, 그 시선이 사라진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사회 자체의 분위기가 다르다.
뚱뚱해도, 못 입어도, 나이가 많아도, 혼자여도.
그냥 여기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 누가 쳐다보거나 수군거리거나 하지 않는다.
그 자유가 처음엔 낯설다. 그런데 익숙해지면,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 시선들이 새삼 무겁게 느껴진다.
\'충분함\'의 감각
필리핀에서 한 달을 살다 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생각보다 이것저것 없어도 되더라.\"
한국에서는 더 좋은 차, 더 큰 집, 더 나은 직장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현재는 언제나 부족하고, 목표는 언제나 저 앞에 있다. 그 레이스가 너무 오래 계속되면,
사람은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을 볼 여유를 잃는다.
그런데 필리핀에서는 다르다. 에어컨 나오는 방에서 자고, 하루 세 끼 먹고, 바다가 가까이 있으면 —
그것으로 오늘이 꽤 괜찮은 날이 된다. 그 단순한 충분함을, 몸이 기억하기 시작한다.
그 감각이 중독이다. 필리핀이 자꾸 오게 만드는 진짜 이유는, 바다도 아니고 날씨도 아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그 감각. 한국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던...
그 느낌을, 여기서는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필리핀에 여러번 방문했다.
하지만 특별히 뭔가를 기대하고 행동하는건 없다.
설명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냥 편하다.
비로소 휴식을 취하는 느낌을 받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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