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 와서 사업을 하겠다는 분을 꽤 만납니다. 임대료가 한국보다 낮고, 한인 손님도 있고, 일단 가게만 열면 될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온라인 마케팅을 업으로 여기서 살고 있으니, 그 마음이 이해는 됩니다. 다만 현장에서 반복해서 보는 건 다른 장면입니다. 세부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싸게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허가·현금·사람·손님을 동시에 붙잡는 일입니다.
이 글은 법률 상담이 아닙니다. 세부에 가게를 내거나 서비스를 팔기 전에, 제가 주변에서 자주 본 함정을 먼저 적어 둔 메모에 가깝습니다. 서류와 세율은 해마다 바뀌니 최종 확인은 현지 회계사나 컨설턴트에게 맡기시기 바랍니다.
사업이 아니라 관계가 먼저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 계약서와 카드 결제가 먼저입니다. 여기선 그 앞에 사람이 있습니다. 건물주, 바랑가이(barangay) 사무실, 옆 가게, 거래처 직원. 처음 한두 달은 “이 사람이 믿을 만한가”를 서로 재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싸다는 이유로만 자리를 고르면 나중에 비용이 커집니다. 주차, 치안, 배수, 한인 동선, 현지 손님 동선이 안 맞으면 홍보비를 아무리 써도 발길이 안 붙습니다. 계약을 쓰기 전에 평일 낮과 밤, 주말을 각각 한번씩 가서 사람 흐름을 보세요.

세부의 사업은 서류보다 먼저, 그 자리에서 누가 나를 알아보느냐로 시작됩니다.
허가와 세금, 미룰수록 비싸진다
개인 상호는 상호등록(DTI), 법인은 증권거래위원회(SEC)를 거칩니다. 그다음 세금식별번호(TIN)를 받고, 시장허가(Mayor's Permit)와 바랑가이 증명까지 맞춰야 가게 문을 여는 그림이 됩니다. 이름은 거창해 보여도 실제로는 “이 사람이 이 자리에서 이 업종을 한다”는 확인 절차입니다.

문제는 순서를 건너뛰는 경우입니다. 일단 열고 손님을 받다가 단속이나 건물주 요청이 오면, 그때부터는 벌금과 시간 비용이 한꺼번에 옵니다. 임대 계약서 명의와 허가 명의가 다르면 은행 계좌와 카드 결제도 막히는 일이 있습니다.
외국인 지분이 들어가는 업종은 더 까다롭습니다. 소매·일부 서비스는 지분 제한이 있을 수 있으니, “한국 이름으로 현지인 명의만 빌리면 된다”는 말은 위험합니다. 분쟁이 나면 가게와 재고가 남의 것이 됩니다.
현금이 마르기 전에 손익을 숫자로 보라
세부 사업에서 제일 흔한 실패는 장사가 안 돼서가 아니라, 현금이 먼저 떨어지는 것입니다. 임대 보증금, 인테리어, 초기 재고, 헬퍼·직원 급여, 그랩(Grab) 광고, 예상보다 느린 카드 정산. 이 다섯이 한꺼번에 나갑니다.
한국 감각으로 “두세 달이면 손익분기”를 잡으면 빠듯합니다. 한인 손님은 입소문에 시간이 걸리고, 현지 손님은 가격과 습관이 다릅니다. 저는 신규 매장에 최소한 여섯 달치 고정비를 통장에 남겨 두라고 말합니다. 매출 목표가 아니라, 매출이 늦어져도 문을 닫지 않을 돈입니다.

페소로 계산하세요. 한국 환율로만 보면 싸 보이는 임대가, 전기·발전기·정수·쓰레기 처리까지 더하면 전혀 다른 숫자가 됩니다. 매일 매출·지출을 수첩이든 엑셀이든 적는 사장님이 오래 갑니다.
사람을 쓰면 사업이 쉬워지지 않는다
세부에선 사람을 쓰는 순간 사업의 성격이 바뀝니다. 헬퍼와 매장 직원은 역할이 다릅니다. 집을 봐 주는 분에게 가게 재고와 현금을 맡기면, 책임 범위가 흐려집니다.
급여일, 근무 시간, 휴일, 사회보험(SSS)과 건강보험(PhilHealth)을 처음에 분명히 하세요. “나중에 잘되면 더 줄게”는 여기선 약속으로 안 들립니다. 반대로 사장이 규칙을 자주 바꾸면 직원도 규칙을 안 지킵니다.
절도는 큰 사건보다 작은 구멍으로 옵니다. 재고 실사, 금고, 포스(POS) 권한을 처음부터 나누세요. 의심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실수하지 않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잘한 직원은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문제는 따로 짧게 말하는 편이 분위기가 덜 상합니다.
한인만 바라보면 시장이 너무 작다
한인 커뮤니티는 소문이 빠릅니다. 한 번 실망하면 회복이 느립니다. 반대로 한인만 바라보면 손님 수가 금방 천장에 닿습니다. 세부에 사는 한국인 숫자는 가게를 여러 채 먹일 만큼 크지 않습니다.
현지 손님을 받으려면 메뉴·가격·영업시간이 달라져야 합니다. 한인 입맛만 맞춘 가게가 점심 현지 손님을 놓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배달을 한다면 그랩푸드(GrabFood)나 푸드판다(Foodpanda) 수수료를 원가에 넣어야 합니다. “배달이 되니까 손익이 좋아질 것”이라는 착각이 재고를 키웁니다.

마케팅도 채널이 갈립니다. 한인에게는 카카오톡과 세부어때 같은 커뮤니티가 먼저이고, 현지에게는 페이스북(Facebook)과 짧은 영상이 먼저입니다. 둘 다 하겠다고 예산을 쪼개기 전에, 이번 달에 누구 돈으로 임대료를 낼지를 정하세요. 그 손님이 주 고객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적어볼 다섯 가지
- 이 가게의 주 손님은 한인인가, 현지인인가. 둘 다라면 매출 비중을 숫자로 적어 둔다.
- 허가 명의와 임대 명의, 통장 명의가 같은가. 다르다면 왜 다른지 한 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매출이 예상보다 늦게 들어와도 여섯 달을 버틸 현금이 있는가.
- 사람을 쓸 경우 급여일·근무·보험을 첫 주에 문서로 남길 수 있는가.
- 내가 직접 할 일과 맡길 일을 나눴는가. 사장이 매일 자리에 없으면 재고와 현금이 먼저 흔들린다.
세부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낭만이 아닙니다. 더운 오후에도 재고를 세고, 직원 급여를 맞추고, 손님 한 명의 불만을 다음 날 메뉴로 고치는 일입니다. 대신 여기서 오래 가는 사장님들의 공통점은 단순합니다. 크게 벌겠다는 말보다, 오늘 나간 돈과 들어온 돈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준비 중이면 이 다섯 줄을 수첩에 먼저 적어 보세요. 이미 문을 연 분이라면, 이번 주 매출이 아니라 이번 주 현금이 남는지부터 보시면 됩니다. 그 숫자가 보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세부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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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모험의시작! 인생은 항상 모험의시작이지요 걱정 또 걱정하면 살아야지요